Ⅰ. 서론
북한은 다른 사회주의 나라들처럼 주택부문을 비생산적 소비부문으로 간주하여 주택건설이나 유지보수에 소극적이었다. 그래서 도시들에서 주택 노후화나 멸실 또는 가구수 증가에 따른 주택 부족 문제가 특히 1980년대 이후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평양만 보더라도 김정일은 1970년대 말과 1990년을 전후해서 여러 아파트 ‘거리’를 조성했지만 주택사정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살림집(주택) 투쟁이 계급투쟁에 앞선다’1)고 할 정도로 심각한 주택사정을 완화하기 위해 ‘고난의 행군’을 겪고 난 2000년대 이후 김정일 정권은 기관·기업소들이 자체적으로(자력으로) 주택을 건설하도록 허용했다. 이에 따라 기관·기업소들은 비공식적으로 개인자금을 끌어들여 주택건설에 나섰고, 이는 주택의 ‘불법적’ 상품화와 매매에 따른 비공식 주택시장의 발전으로 연결되었다. ‘개인 투자자’나 ‘개인 청부업자’가 중심적 역할을 하는 이런 ‘개인 건설주택’과 별개로 2010년대 이후 김정은 정권은 중앙과 지방에서 기관·기업소들을 동원하여 ‘국가주택’을 건설해서 주민들에게 무상으로 공급해 왔다.2) 김정은 정권의 이런 이원적 주택건설·공급은 주택배정제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김정은 정권의 주택배정제도의 운영 실태와 특징 그리고 주택건설사업의 정치성 문제를 살펴본 뒤에 비공식적 주택시장 발전의 제한성 문제를 검토하고 그 시사점을 찾아보고자 한다.
Ⅱ. 기존연구 검토
기존 연구들은 신축주택의 상품화를 중심으로 주택시장의 활성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 이 연구들은 주요 도시들에서 주택거래에 의해 비공식 주택시장이 발전하고 있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데, 두 부류로 나눠볼 수 있다. 한 부류의 연구는 2000년대 이후 도시 비공식 주택시장의 발전 실태와 그 정치경제적 의미를 분석한다(이석기 외, 2014: 137-166; 이철, 2016; 정은이, 2018; 최상희 외, 2015; 홍민, 2014). 다른 한 부류는 북한의 살림집법과 부동산관리법 내용을 정리한 연구들이다(송현욱, 2015; 문흥안, 2018). 이 연구들은 법률의 개정 내용 분석과, 국가주택 관리 관련 규제조항들과 위반시 처벌조항 등의 검토를 통해 북한사회에서 주택 교환이나 매매 욕구가 점차 커져왔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런 변화의 의미 해석을 전자의 연구성과에 의존하고 있다.
이 연구와 직접적 관련이 있는 전자 연구들의 의의는 두 가지 정도이다. 한 가지는 2000년대 이전 북한 주택시장 형성의 약식 전사(前史)와 연계해서 그 이후 도시 주택시장 발전의 배경적 요인들을 구체적으로 검토한 점이다. 그 주된 요인으로 심각한 주택 부족 상황과 더불어 시장 소득활동에 따른 도시 ‘중간층’ 가구의 주택 고급화 욕구를 지적하고 있다. 다른 한 가지는 김정은 정권의 주택개발을 ‘민간 부동산 자본(주택 개발업자)과 관료집단의 연합세력’에 의한 주택시장 발전과 ‘시장 주도적’ 이행 가능성과 연결해서 평가한 점이다.
그런데 이 연구들은 김정은 정권 주택사업의 시장 주도성을 강조하면서 주택배정제도에 의한 탈상품화된 주택공급 문제는 소극적으로 파악함으로써 주택시장의 ‘사적부문 주도적’ 발전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김정은 정권은 사인독재체제3)의 안정적 유지를 위해 ‘시장세력’의 주택건설 성과에 의존하면서도 주택시장의 발전을 통제하는 데에도 적극적인데 이런 정책적 지향이 주택배정제도의 운영에 집약되어 있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따라서 상품화된 주택건설·공급에 따른 주택시장 발전이라는 일면적 평가를 보정하고, 김정은 정권의 주택정책과 연계된 주택시장의 특징과 그 함의를 분석하기 위해서 일차적으로 주택배정제도의 운영 실태에 대한 집중적 검토가 필요하다.
자료적 제약 때문에 이 글에서도 평양의 신축주택 위주로 구체적인 사례들을 분석하지만 몇몇 지방도시의 사례도 검토하고자 했다. 이 작업을 위해 탈북자 14명을 대상으로 총 27회의 심층면접조사를 통해 수집한 자료를 일차적으로 활용하고, 북한 공식자료와 대북매체 보도자료를 보조적으로 검토했다. 피면접자들의 기본 정보는 <표1>과 같다. 이하에서 면접조사 자료의 출전은 A~N 코드로 표기한다.
Ⅲ. 주택배정방식들과 그 특징
주택배정제도는 크게 보아 배정대상을 기준으로 ‘특별 배정방식’과 ‘일반 배정방식’으로 구분될 수 있다. 특별 배정방식은 국가가 특정한 대상이나 집단에 한정하여 특혜적으로 주택을 배정하는 방식이다. 특별 배정주택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선물집, 직무주택, 가족아파트가 여기에 해당한다. 일반 배정방식은 국가가 특별 배정대상이 아닌 일반 주민들에게 주택을 배정하는 방식으로, 일반 배정주택이 여기에 해당한다. 주택배정제도는 이 네 가지 주택배정방식의 운용을 통해 구체화된다. 따라서 주택배정제도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서 먼저 이 주택배정방식들의 특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4)
그런데 2000년대 이후 부분적으로 변화된 주택배정방식들과 관련해서 주택 상품화나 주택시장 발전문제를 검토한 연구는 없는 것 같다. 이는 기존 연구들에서 주택배정제도를 주택시장 발전에 따라 사실상 형해화된 것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5) 그러나 A뿐만 아니라 B, D, E, G, H 등도 ‘선물집’, ‘직무주택’, ‘가족아파트’, ‘퇴직자 주택’ 등의 배정·관리방식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듯이,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북한 내부적으로 이런 주택배정방식들이 특이하거나 낯선 것은 아니다. 물론 증언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검토작업의 한계를 충분히 유념해야 하겠지만 이런 주택배정방식들의 규명은 북한의 주택정책이나 주택시장의 발전을 분석하고 설명하는 데 필요한 작업이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여 여기서는 탈북자들의 유관 증언을 토대로 해서 네 가지 주택배정방식을 살펴본다.
선물집은 김정일이나 김정은의 직접 지시에 의해 특정한 집단이나 개인에게 선물로 공급되는 주택을 뜻한다. ‘법 위에 방침이 있는’ 사회이기 때문에 선물집은 살림집법 배정 우선순위와 무관하게 배정된다(B1). 최고권력자의 선물인 만큼 선물집 건설에는 대체로 당자금(혁명자금)이 들어가고, 전문 건설집단들이 시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물집은 최고권력자가 중시하는 국가정책적 역점사업의 성과 산출을 독려하거나 그에 대한 보상으로 유관 집단 성원들에게 ‘하사’된다.6) 실제로 주민 통치수단으로서 선전예술부문의 정치적 중요성을 강조한 김정일 정권에서는 은하수관현악단이나 공훈국가합창단 등 예술인 집단이나 공훈 체육인들에게 선물집이 많이 주어졌지만, 과학 중시, 인재 중시 정책을 표방한 김정은 정권에서는 과학교육부문의 고급인력집단에게 선물집 공급이 상대적으로 집중되었다(B1).
선물집은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최고권력자가 개별 방침으로 특정 개인에게 직접 하사하는 ‘개별적 선물집’이다.7) 이 선물집은 최고권력자의 지시가 없는 한 해당 주택을 환수할 수 없기 때문에 평생 거주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특정 집단에게 하사하는 ‘집단적 선물집’이다. 이 선물집은 아래의 직무주택에 해당하기 때문에 대상자가 연로보장이나 조동(인사조치) 등으로 해당 직무에서 배제될 때에는 더 이상 거주할 수 없고 소속 단위가 제공하는 주택으로 이주해야 한다.8) 이런 ‘선물집 직무주택’은 ‘자식이 동일 부문에 종사할 때에만 자식이 이어서 거주할 수 있다’(A1, B1, E, K). 정권의 ‘대를 이은 충성’ 담론이 선물집 배정에서 체현되고 있는 셈이다.
직무주택은 당기관, 군대, 행정부문 등의 간부들이 상위급 직무나 비밀 보장 등과 관련된 국가적 직무 수행 기간 동안 배정받아 거주하는 주택이다. 따라서 해당 간부는 직무에서 해제되면 직무주택에서 ‘철거되어’ 소속기관에서 관리하는 ‘퇴직자 주택’을 배정받아 입주한다.9) 직무주택은 국가 자금과 자재로 건설된다. 여기에는 당·행정기관의 경우 중앙당 부원급 이상 간부들이 거주하는 평양 중구역의 간부 아파트, 내각 총리 저택, 평양시당 책임비서 및 조직비서, 각 도·시·군당 책임비서 및 조직비서급과 인민위원회 위원장의 단독 저택 등이 해당하는데, 외부인의 입출입이 통제된다. 군의 경우 고위 간부들이 거주하는 평양시 서성구역의 군 가족아파트, 대성구역의 호위사령부 가족아파트 등이 직무주택에 속한다(A1).10) 그리고 연구집단의 경우 김정은 정권에서 건설한 미래과학자거리 아파트11)나 김일성종합대학과 김책공업종합대학 아파트와 같은 과학자 직무지구 아파트도 있다.12) 과학자 직무주택은 좀 예외적이지만, 대체로 직무주택은 국가사업의 기밀 보호와 당·정·군 고위간부들의 보호·감시를 위해 국가가 제공하는, 사회주택과 분리된 거주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13)
가족아파트는 중앙기관 및 산하 기관들이 국가로부터 주택 허가를 받아 자체적인 자금, 자재, 노력, 설비 보장을 기본으로 해서 건설하여 소속 성원들에게 배정하는 주택을 말한다. 여기에는 중앙당, 국방성, 국가보위성, 사회안전성, 중앙검찰소, 호위사령부 등 중앙기관과 내각 성기관들의 가족아파트들이 해당한다.14) 가족아파트는 입주한 기관 성원이 연로보장 등으로 직무가 해제되거나 다른 가족 성원이 직무를 승계하지 않아도 ‘영구적으로 거주 가능한’ 주택이다(A2). 가족아파트를 배정받지 못한 특수단위 성원들 다수는 일반 배정주택에서 거주하는 실정이지만 중앙 권력기관들의 가족아파트는 체제보위기관들에 대한 특혜적인 주택공급에 해당한다. 김정은 정권 들어서서 건설된 평양 려명거리 아파트 다수는 국가보위성, 호위사령부, 사회안전성, 금수산기념궁전 관리국 간부 및 요원들이 입사한 가족아파트들이다(A1).15)
권력기관들의 가족아파트 건설·공급도 국가기관들의 위계적 서열에 따라 내적으로 차등화되어 있다. 실례로 김정은 정권 초기에 평양의 국방성 사택(가족아파트) 옆의 부지에 내각 부처들이 아파트 여러 동을 건설하던 중에 국방성에서 기밀사업 보호를 내세운 제의서를 올려 비준을 받아 해당 부지를 자기네 사택 부지에 포함시킨 일이 있다(A2).16) 이 사례에서 보듯이 특수단위를 포함한 일부 권력기관들의 가족아파트도 사업 기밀 보호와 유관 간부들의 신변 감시를 위해 사회주택과 공간적으로 분리해서 건설·공급한다고 볼 수 있다.
일반 배정주택은 살림집법(2014년 7월 수정보충, 제9조, 제1조)에 명시된 것처럼 살림집 건설주체인 인민위원회, 기관, 기업소, 단체가 국가계획에 물려 건설자금, 자재, 설비 등을 지원받아 ‘계획적으로’ 건설해서 일반 주민들이나 종업원들에게 ‘무상공급’하는 영구적으로 거주 가능한 주택이다. 따라서 위의 세 부류의 ‘특별 배정주택’을 제외한 나머지 주택공급이 이 부류에 속한다. 그런데 일반 배정주택도 살림집법(제30조)에서 혁명투사, 혁명(애국)열사 유가족, 전사자(피살자)가족, 영웅, 전쟁노병, 영예군인, 제대군관, 교원, 과학자, 기술자, 공로자, 노력혁신자 등에게 우선적으로 배정하도록 정하고 있다. 이 점에서 일반 배정주택의 경우에도 체제유지에 관련된 정치적·경제적 ‘기여도’에 따른 배정 우선순위 원칙이 적용되고 있다.
Ⅳ. 주택배정제도 운영 실태
전체적으로 보면 위의 네 가지 주택배정방식은 특별 배정주택 부문과 일반 배정주택 부문이 위계적으로 층화되어 있는 걸 알 수 있다. 아래에서는 두 부문의 주택배정방식이 주택 상품화나 주택시장 발전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검토한다.
방침분 주택건설과 관련해서 당자금이 투입되는 경우 이 건설자금은 ‘그 어느 누구도 흐지부지 못하기’ 때문에 간부들이 선물집 건설이나 배정에서 사익을 취하기 어렵다(D2). 경우에 따라 선물집 건설자금의 일부로만 당자금이 투입되기도 하는데(B3), 이때 부족한 자금은 건설 책임을 맡은 당기관이나 특수단위 책임자들이 ‘자기 권한을 강짜로 써서(강압적으로 사용해서)’ 해당 기관의 산하 외화벌이회사를 동원해 자재를 ‘기부’하는 식으로 해결한다(A1).17) 따라서 선물집 건설에는 개인 투자자18)나 개인 청부업자19)가 끼어들 수 없고, 선물집은 비공식적으로 매매될 여지가 없다.20) 일반 주택처럼 ‘입사증(국가주택 사용허가증)을 바꿔줄 수도 없지만 바꿔주는 사람 자체가 죽는다’(A1).21) 이런 점에서 선물집의 공급과 관리는 주택의 상품화나 주택시장과 단절되어 있다.
직무주택도 용도상 원칙적으로 개인 간 교환이나 거래대상이 될 수 없다.22) 다른 부문의 직무주택은 말할 것도 없지만, 김정은 정권에서 과학원이 건설주가 되어 지은 평양의 여러 과학자지구 아파트들만 해도 입주 대상이 과학자 등으로 한정되어 있어서 비대상자가 구입하여 거주할 수 없다. 만일 배정받은 집을 판매할 경우 방침 건으로 해서 팔고 산 사람 모두 현물과 돈을 회수당한다(A3). 이와 좀 다르게 재정 형편이 어려운 지방도시에서 대학교원 직무주택을 자체적으로 건설할 때 소수 개인들한테 ‘지원’ 형식으로 ‘선투자’를 받고 아파트를 배정해 주는 경우도 있다(H1).23)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직무주택의 건설·공급은 주택시장과 연계되어 있지 않다.
2000년대 이후 권력기관들의 자체적인 주택건설은 특히 2007년에 제기된 평양시 ‘10만 세대 살림집건설’ 사업에 편승하여 크게 활성화되었다(이철, 2016: 27-28). 특수단위와 내각 성기관을 포함한 중앙 권력기관들의 가족아파트 건설과 배정은 개인자금(개인 투자자, 개인 청부업자)과의 연계와 주택 상품화 정도에 따라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특수단위 가족아파트는 해당 기관의 비밀 보장을 조건으로 국가 허가를 받아 ‘자체적으로’ 건설하는 주택이다. 이런 부류의 주택은 보안이 강조되기 때문에 개별 단위가 건설한 뒤에 ‘국가에 바치는 몫’(국가 귀속분 주택)24)이 없고, 입주자들 사이의 주택 교환(비공식적 매매)도 같은 기관 소속인 경우로 제한된다.25) 그래서 원칙적으로 외부인 입주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개인자금을 끌어들이지 않고 자체로 건설한다(A1, B2).
2005년에 호위사령부가 개인자금을 끌어들여 중구역에 가족아파트을 건설해서 대다수 집을 개인들(대체로 내각 성기관 상급간부들)에게 배정한 일이 있었다. 이 일은 ‘호위사업 비밀보안’ 위반으로 김정일에게 보고되어, 판매된 주택들을 회수하고 구매자들을 처벌하라는 방침이 떨어져서 구매자들이 재산상 큰 손실을 입었다. 이 아파트 회수 사건이 있은 뒤부터 개인들은 특수단위들이 건설한 가족아파트 구입을 극력 회피했다. 실례로 2014년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와 국방위원회가 평양 중구역에 각기 아파트를 건설하였는데, 이 단위들 자체가 개인 판매를 금지하기도 했지만, 구입하려는 개인도 없었다(이철, 2016: 94-95). 자체적 주택건설의 어려움 속에서도 체제보위의 핵심이 되는 특수단위 가족아파트의 탈상품화된 공급체계가 유지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업 보안의 특수성을 강하게 요구받지 않으면서 자체적인 건설 역량이 부족한 권력기관들은 국가계획에 물려 건설자금이나 자재를 일부라도 확보하고, 개인자금을 끌어들여 가족아파트를 건설한다. 권력기관의 가족아파트는 해당 단위 책임간부들의 ‘결심에 의해서 짓는다’(H3). 이들이 건설에 나서는 이유는 중앙의 지시를 이행하여 좋은 정치적 평가를 받고, 기관 운영자금을 벌기 위한 것이지만, 기본 목적은 비공식 수입을 얻는 데 있다(M1, H2). 단위 간부들과 건설상무26) 등은 개인 청부업자들과 연계하여 국가 귀속 배정분을 제외한 나머지 공급 물량을 자체적으로 처리하면서 큰 수익을 얻는다. 이는 주택건설이 ‘일반 생산물 거래와 달리 빼먹을 공간이 너무 많고 움직이는 돈 규모가 엄청나서’ 큰 비공식적 수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A2). 또, 건설 현장에서는 ‘자재 구입이나 인건비 지출 등 어떻게든 돈 총량을 맞출 수 있는 공간’이 있기 때문에 간부들이 적발되어 처벌받는 일도 거의 없다(H2, A2).
그런데 기관 명의로 건설명시를 수월하게 받고, 국내 자재를 국정가격으로 보장하고, 수입자재를 개인이 아닌 국가가 수입하는 형식으로 조달할 수 있는 개별 단위의 역량 유무에 따라 ‘건설비용 차이가 엄청나다’(A2). 따라서 힘이 없는 단위들은 유능한 개인 청부업자를 끌어들이기도 어렵고, 개인들한테서 선투자를 받기도 힘들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주택건설을 하기가 어렵다(H2). 개별 단위들의 주택건설이 특수단위를 포함한 권력기관들 위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앙 권력기관의 한 실례를 보면, 김정은이 체육강국 건설에 관심이 많을 때 체육성은 평양 중구역에 군부대를 동원해서 체육인 아파트를 건설해서 총세대수의 절반 정도를 건설단계에서 ‘기부’ 명목으로 자재나 자금을 선투자한 개인들에게 배정했다(B1).27) 지방 권력기관인 한 도재판소의 실례를 통해 가족아파트의 부분적 상품화를 좀 더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2010년대 초에 이 도재판소는 건설명시를 받은 뒤에 당간부 2인으로 건설상무조 책임자를 조직하고, 각각 재정, 국내 자재, 수입자재 보장업무를 책임지는 ‘건설 능력자’들로 상무들을 정했다. 건설상무조는 국가 귀속분 10%, 철거세대들과 직원들 배정분, 세멘트, 철강, 전기 등의 관계자들 보장분, 본인들 집, 그리고 책임간부들 상납용 현금 수입을 보장해야 했다. 이를 위해 건설상무조는 국가 배정자금을 가지고 국가계획에 물려 있는 건설자재를 국정가격으로 최대한 많이 확보하려고 했다. 또, 설계사업소에 뇌물을 써서 원래 15층으로 건설명시를 받은 설계를 변경해서 개인 구매자들이 선호하는 중간층의 세대 평방수는 크게 하고, 의무적인 공급대상들에게 무상배정하는 저층이나 고층의 세대 평방수는 축소하는 식으로 층별 공급세대수를 조절했다.28) 그리고 건설과정에서 개인들의 ‘기부’를 유도해서 자금이나 자재를 추가로 확보했다(A2).
특수단위 지방기관들도 자금이 없기 때문에 중앙 특수단위들과 달리 이런 식으로 가족아파트를 건설한다. 실례로 2010년대 중반에 한 지방의 도보안국은 아파트 4동을 건설해서 20%를 국가에 바치고, 직원들한테도 일부 배정했지만, 가장 많은 물량을 개인들한테 판매했다. 이 때문에 중앙당 검열을 받기도 했지만, 판매 수익금 일부를 기관 공식 수입금으로 처리하고, 이 자금으로 장비 현대화 설비를 수입한 걸로 해서 처벌받은 간부는 없었다(H2).
이 실례들에서 보듯이 개인자금에 부분적으로 의존하여 건설한 가족아파트는 직원용 특별배정분, 철거세대분과 국가 귀속분 같은 일반배정분, 간부 상납용 및 설비·자재 보장에 대한 보상용 물량 중 일부(자가 입사용)를 제외한 나머지 물량이 개인 ‘기부자’들에게 판매되는 식으로 주택시장에 상품으로 비공식적으로 공급된다.
김정일 정권과 마찬가지로 김정은 정권은 국가기관들이 자체 힘으로 필요한 자금을 조달해서 ‘본신(本身)사업’을 보장하도록 하고 있다. 특수단위들은 본신사업 역량 강화에 필요한 외화자금을 확보한다는 명분하에 주택건설·판매사업에 나선다. 이는 수출원천 외화벌이식의 국내 외화벌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주택공급방식이기도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부분적으로 상품화된 권력기관 가족아파트 공급이 ‘완전 상품화된’ 변형이라고 볼 수 있다. 국내 외화벌이용 주택건설은 개별 단위가 제의서를 올려 김정은의 비준을 받아 자재나 자금 등을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조달해서 건설하는 절차를 밟는다.29) 국가자금이나 자재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단위 성원들에 대한 의무적 배정이 없다. 국가 귀속분을 제외한 나머지 물량을 자체적으로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개인 청부업자와 연계된 건설상무나 단위 책임간부들의 비공식적 수익 확보가 특히 중요한 건설 유인이 된다.
실례로 2010년대 초에 한 특수군사시설 건설단위는 부대원 후방사업과 전투기재 보충 명목으로 자체적으로 아파트를 건설하겠다고 제의서를 올려 비준을 받은 다음에 산하 무역회사 간부를 건설상무로 정했다. 시공주이자 개인 청부업자 역할을 한 건설상무는 평양 중구역의 공지를 선정해서 건설명시를 받았다.30) 그는 자기 자금과 다른 개인 투자자들의 자금을 끌어들여 자재, 설비, 노력들을 조달해서 한 층 4세대 10층 아파트 1동을 1년 걸려 건설했다. 완공된 아파트 40채 중 간부 상납용 5채, 국가 귀속분 20% 8채, 건설노력을 보장한 군부대와 돌격대 지휘관에게 각각 1채, 골재, 모래, 목재, 세멘트, 강재, 마감건재 보장하는 곳에 각각 1채, 중장비 임대사업소에 2채, 그리고 본인 몫으로 2채 해서 총 25채를 처리했다. 나머지 15채를 1채당 평균 7만 달러 정도에 판매해서 얻은 1백만 달러를 공식 수익금으로 처리했다.31) 이 사업에 의해 간부들은 새 집에 들어가거나 이를 팔아 부수입을 챙겼고, 개인 청부업자인 건설상무도 큰 수익을 얻었다(D2). 개별 단위 입장에서도 산하 무역회사가 국내 외화벌이로 1년에 1백만 달러를 번 ‘괜찮은 회사’로 평가받았다. 국가 입장에서도 개별 단위가 ‘개인건설’을 이용한 외화벌이를 해서 사업역량을 강화하고, 주택난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줬다는 점에서 이득이 된다. 물론 이는 국가가 주택 상품화에 따른 주택시장 발전이라는 정치적 부담을 떠안는 대가이기도 하다. 이 사례는 국내 외화벌이용 아파트 건설은 권력기관 일반보다는 특수단위들 위주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보여준다.32)
일반 배정주택의 건설·공급 주체는 국가와 일반 기관(권력기관 제외)·기업소라고 할 수 있다. 이들도 재정적 여력이 별로 없기 때문에 주택건설·공급에서 부분적 상품화는 불가피하다. 이들은 건설자금, 자재, 설비, 노력의 조달 등에서 차이가 있는데, 여기서는 일반 기관을 제외하고, 국가와 공장·기업소로 구분해서 일반배정 실태를 살펴본다.33)
국가의 일반배정 주택공급은 중앙국가기관과 (도·)시·구역 지방인민위원회의 주택건설로 나눠볼 수 있다. 주택공급 규모로 보면 중앙국가기관의 평양 주택건설에 상대적으로 집중되어 있다. 지방에서는 그만큼 재정적 어려움이 크기 때문에 인민위원회 대신에 도당이나 때로는 시당이 책임지고 나서서 도적·시적으로 인적·물적 자원을 동원해서 주택건설에 나서는 게 현실이다. 국가가 주도하는 일반배정 주택건설·공급에서 건설과제를 나누어 맡은 중앙기관·기업소나 지방 당정기관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는 해당 기관·기업소 책임간부들의 주택건설 집행 실적이 김정은에 대한 충성심의 척도로 평가되기 때문이다(G).
중앙국가기관의 주택건설은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이루어진다. 이는 국가대상건설 과제로 제기되어 건설지휘부가 구성되고, 군 건설부대, 중앙당을 위시한 권력기관, 내각 성기관, 중앙 기업소, 도 단위 건설돌격대 등이 동원되고, 각 단위별로 나눠 맡아 시공한다. 평양의 주요 거리 주택건설이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국가대상건설 사업이기 때문에 기본 건설자재는 대체로 국가계획에 의해 보장되고, 전국적으로 건설보조물자 지원사업이 조직되고, 평양시민들은 건설보조노력으로 동원된다. 그렇지만 전기, 연유(연료용 기름), 건설 중장비 임대나 수입자재 구입 비용 등을 포함한 건설자금은 시공주체인 각 단위들이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건설자금을 개별 단위의 자체 외화벌이나 기타 ‘더벌이’ 수입 등으로만 충당할 수 없기 때문에 해당 단위가 건설하는 아파트 총세대수 중 일부를 개인들에게 판매해서 얻은 자금으로 충당하게 된다.34)
실제 사례에서 이 점을 확인할 수 있다. 2010년대 중반에 당 산하 한 건설기업소는 수만 세대 공급이 계획되어 있는 김정일 유훈대상 건설사업의 일부로 평양의 주변 구역에서 한 층 4세대 26층짜리 아파트 1동을 과제로 받아 건설했다. 이 기업소는 부족한 건설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전체 세대수의 10%를 비공식적으로 판매했다. 예컨대 타워 크레인 임대 기업소와 배전부 당비서에게 각각 1채를 주었고, 경유 구입 등을 위해 개인들한테 ‘기부금’을 받는 형식으로 몇 채를 팔았다.35) 신축 아파트를 넘겨받은 시인민위원회 주택배정처는 시공주 추천 배정물량 10%를 제외한 집들 가운데 철거세대와 제대군관 등에게 1층이나 만장(맨 꼭대기층)을 배정하고, 나머지 집들은 다른 입사 대상자들에게 배정했다. 이때 주택배정처는 뇌물을 받고 본래 입사 대상자에게서 집을 구입한 세대의 입사증을 교체해 주거나, 배정된 층·호수를 변경해 주는 식으로 배정사업을 ‘조절’하면서 주택거래를 중개했다(A3).
이 사례에서 보다시피 중앙국가기관이 건설한 일반 배정주택의 경우 개인의 ‘기부금’ 헌납이나 (철거)입사증의 비공식적 매매 등을 통해 부분적으로 상품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그렇지만 ‘국가가 돈 내서 지은 아파트’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개인들 간 매매가 금지되어 있다.’ 또 기본적으로 국가가 제정한 공급 순위에 따라 배정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무상 입주가구가 다수를 차지한다는 점(A1, D1)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36)
지방도시들은 시·구역인민위원회가 건설주체가 되어 국가계획에 따라 지방건설 과제로 매년 소규모로 주택을 건설한다. 국가 주택건설정책을 집행하고 그 실적을 중앙에 보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인민위원회는 당기관의 지도하에 주택건설에 나서지만 현실적으로 도당이나 시당이 책임지고 건설사업을 조직하거나 지원하지 않는 한 ‘규모가 있는’ 주택건설은 사실상 어렵다. 도당이나 시당도 중앙국가처럼 도내·시내 주요 기관·기업소들에게 건설과제를 분담시켜 주택을 건설하면서 소규모적으로 개인들의 ‘기부’를 받아야만 한다. 건설에 쓸 수 있는 외화벌이 수입이 적어서 자금이나 자재 등을 자체적으로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37) 두 사례를 통해 이 점들을 확인할 수 있다.
한 도시에서 2010년대 중반에 도당이 책임지고 낡은 땅집들을 헐고 2년에 걸쳐 5층 아파트 7동을 건설했다. 이 도시는 혁명전적지 답사를 위한 외지인들의 방문이 잦은 관계로 도시 미화사업을 신속하게 끝내기 위해 도당, 도인민위원회, 도검찰소, 도보안국 등 주요 기관과 소수 기업소들이 한 동씩 맡아 자체적으로 건설했다.38) 시내 공장·기업소들은 종업원 돌격대를 조직해서 투입했고, 여맹조직과 도내 여타 지역에서도 보조노력을 지원했다. 완공된 아파트에는 제대군관, 열사 유가족, 공로자, 철거민 등이 입주했다(J, K). 건설자금이나 자재를 ‘기부’하고 입주하거나, 철거입사증을 사서 입주한 개인들은 주거여건이 나은 2, 3층에 입주했다(L, G). 이 사례는 혁명전적지와 관련된 지방도시의 정치적 특성상 도당이 일반배정 주택건설에 적극적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39)
2020년에 완공된 신의주의 ‘과학자, 교육자살림집’ 25층 아파트는 과학자와 교원의 생활조건을 보장해 주고, 제대군관 등 주민의 살림집 문제를 해결하라는 중앙의 정책적 지시를 지방적 조건 속에서 도당이 중심이 되어 절충적으로 집행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40) 위 사례처럼 아파트 건설과정에서 주민들은 금전적 세외부담을 해야 했고, 아파트 총세대수 중 일부는 개인들이나 외화벌이기관에 ‘선판매’되었다. 나머지 물량은 교원, 연구사, 기술자 등 공로자들과 제대군관, 철거민, 주택이 부족한 기관들에게 배정되는 것으로 알려졌다.41)
이 두 사례는 지방당 주도의 일반배정 주택공급에서 무상공급 주택이 우세하긴 하지만 개인들한테 판매되는 주택도 적지 않다는 점과 그에 따라 불가피하게 주택시장의 발전을 초래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김일성 때부터 국가가 일차적으로 주민들의 주택을 보장해 주되, 부족한 부분은 공장·기업소가 책임지고 보장해 주도록 한 정책적 기조는 김정은 정권에서도 같다(A2, H1, L). 기업소법(2015년 수정보충, 제51조)에서도 “기업소는 종업원들의 살림집문제…같은 생활성문제를 책임적으로 풀어주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공장·기업소들은 종업원 주택을 공급하려고 하지만 경영 사정이 어렵기 때문에 아파트 같은 집단주택을 자체적으로 건설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42) 그런 사정에서도 공장·기업소 지배인이나 당비서가 종업원 주택을 건설하는 목적은 국가기관 간부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발전을 위해 좋은 평가를 받고, 비공식적 수입을 얻기 위해서이다. 이에 더해 생산단위의 주택건설이라는 점에서 공장·기업소의 노동생산성을 제고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제대군인들, 공장에 오래 있는 사람들, 기술자들 우선으로 해서 집을 (주면)… 종업원들 속에서는 의연히 생산의욕도 높아지고, 일 잘하고 오래 있으면 집도 주는구나 하면서 더 잘 하려고 분발’(D1)하기 때문이다. 책임간부들의 이런 목적과 연계된 종업원 주택 공급 실적은 일차적으로 공장·기업소의 내부 여유자금 보유에 따라 달라진다. 수집한 자료가 제한적이긴 하지만 공장·기업소가 자금 여력이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의 사례를 중심으로 이 점을 살펴볼 수 있다.
안주의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는 김정은의 ‘관심사’ 안에 들어 있는, 국가적으로 내세우는 ‘본보기 공장’이다. 이 기업소는 2013년에 500세대의 제대군인 종업원 다층아파트를 ‘최단기간에’ 건설했는데, 일부 자재뿐만 아니라 마감재까지 자체적으로 해결한 것으로 보도됐다.43) 이 기업소는 기본 생산물인 비료의 국내 수요가 많기 때문에 주택건설에 사용할 내부 여유자금이 있는 곳이다(D1). 따라서 주택건설에 외부 개인자금을 끌어들일 일이 없고, 또 안주 같은 지방도시는 집값이 싸기 때문에 개인 판매는 거의 없고, 완공된 주택은 국가에 바치는 몫을 제외하고 종업원 세대에게 무상공급된다(D1). 그렇지만 이 기업소도 계획수행 생산단위로서 확대재생산용 자금을 종업원 주택건설에 마냥 사용하기를 꺼릴 수밖에 없는 조건에서 건설자금 보전을 위해 몇 채를 팔았을 것으로 보인다(A2, D1). 이 기업소 연합당 책임비서는 종업원 주택 공급 등 후방사업 실적을 인정받아 ‘일 잘하는 일꾼’으로 평가받았는데44) 주택건설을 빌미로 기업소의 ‘사업용’ 비료 자금 일부를 사적으로 유용한 것으로 알려졌다.45)
평양3·26전선종합공장도 김정은이 관심을 갖는 ‘본보기 공장’이다. 이 공장도 ‘3, 4년 일을 하면 살림집이 차례진다’는 말이 공장 안팎에서 나올 정도로 ‘자체의 수익에 기초하여 살림집(을) 건설하여 종업원들의 주택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보도됐다.46) 이 공장도 주 생산품인 전선과 케이블의 국내 수요가 많기 때문에 내부 여유자금이 있는 곳이다(A2). 따라서 이 공장의 종업원 주택 건설·공급도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와 비슷하게 진행됐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위의 ‘본보기 공장’들과 달리 자금 여력이 별로 없어서 종업원 주택을 건설하는 데 개인들의 선투자를 받기도 어렵고, 개인 청부업자도 나서지 않는 공장·기업소들이 있다. 두 사례를 살펴볼 수 있는데, 주택건설·배정방식이 본보기 공장들과 다를 뿐만 아니라 두 사례 간에도 차이가 있다. 한 사례는 대도시의 목재가공 중앙공장이 자체적으로 종업원 아파트를 건설한 경우이다. 이 공장은 2010년대 초에 부지를 받아 아파트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초기에 개인들의 선투자를 좀 받고, 외화벌이도 하고, 더벌이도 해서 건설자금을 모아 30층짜리 아파트 1동을 건설하는 데 7년쯤 걸렸다. 완공된 아파트는 국가 귀속분과 1~2층 철거세대 입주분을 제외한 나머지 물량의 절반은 개인들한테 판매하고, 절반은 종업원들에게 무상으로 배정했다(C).
다른 한 사례는 같은 대도시의 중소 공장 여러 곳이 연합하여 공동 종업원 아파트를 건설한 경우이다. 종업원 수가 수백 명 되는 어떤 반(半)군수공장은 인근 공장 3~4곳과 협력해서 한 층 4세대 10층짜리 아파트 1동을 지었다. 건설기간은 거의 10년이 걸렸는데, 자재 공급 사정에 따라 짓다가 중단하기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이 공장들은 여유자금이 없어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종업원 아파트를 이런 식으로 지어왔는데 김정은 정권에서도 그렇게 하고 있다. 이 공장들은 건설자재도 분담하고, 연장자나 무주택자 등 집을 받을 순서를 정해놓고 공장마다 작업반별로 1~2명을 아파트 건설장에 내보냈다. 이렇게 건설해서 시공주 몫과 국가에 바치는 몫을 떼어주고 나머지 물량을 공장별로 나눠 종업원들에게 무상공급했다(C).47)
위의 본보기 공장 사례들과 함께 놓고 보면 목재가공 중앙공장에서 보듯이 자금 여력이 없을수록 건설한 아파트의 개인판매가 늘어나고, 이는 주택시장 발전으로 연결된다. 그렇지만 권력기관 건설 주택에 비해 공장·기업소의 종업원 주택 공급은 탈상품화된 배정이 상대적으로 우세하고, 개인자금 의존도도 낮다고 볼 수 있다.
Ⅴ. 비공식적 주택시장 발전의 제한성
위에서 살펴본 김정은 정권의 주택배정제도 운영에서 다음과 같은 점들을 알 수 있다. 먼저 특별 배정방식은 최고권력자의 권력기반을 강화하고, 체제보위를 위한 장치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네 가지 면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선물집은 최고권력자가 체제와 정권 유지에 핵심적인 집단들에게 제공하여 충성을 이끌어내는 사인화된 후견적 지배체제의 중요한 상징적·물질적 지지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개별적 선물집’은 자식이 부모 직업을 계승하지 않아도 계속 거주할 수 있고, ‘일종의 신성불가침 영역처럼 간주’될 정도로 특혜적인 주택배정의 정점에 위치한다(B1). 둘째, 국가기밀 보안과 상급간부의 보호·감시를 위해 중앙의 당기관이나 특수단위의 직무주택이나 가족아파트를 일반주택지구와 공간적으로 분리하여 공급하는 정책은 체제안보에 대한 고려가 주택배정제도의 중요한 한 구성요소임을 보여준다. 셋째, 선물집뿐만 아니라 직무주택, 특수단위 가족아파트와 같은 체제보위 핵심집단들의 주택의 탈상품성이 유지되고 있다. 이는 주택의 시장교환에 의해 핵심집단들의 충성심이 약화되는 걸 막기 위한 조치라고 볼 수 있다. 개인의 정치적 지위에 따라 거주면적 등 주거여건에서 차이가 나는 주택공급의 국가통제는 정권에 대한 충성심을 유도하는 중요한 정치적 수단으로 작용하는데,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시장을 통해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개인자금이 연계된 상품주택의 비공식적 판매에서 체제유지 보루인 중앙 권력기관들은 특혜를 받고 있다. 큰 힘이 있는 권력기관일수록 건설부지 위치, 세대 면적, 건축구조의 현대적 설계 같은 주택가격 결정요소들을 해당 기관에 더 유리하게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A1).48)
그 다음으로 일반 배정방식은 ‘인민대중 중심주의’와 ‘우리 국가제일주의’ 등을 포괄하는 ‘우리 식 사회주의’ 이념을 체현하기 위한 국가적 사회보장장치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살림집법(제3조)에 명시된 것처럼 ‘사회주의제도의 본성적요구’에 맞는 ‘국가부담에 의한 살림집보장원칙’의 실천은 정권의 정당성을 보강하는 데 효과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 실천은 몇 가지 조치에 의해 보완된다. 첫째, 특수단위들의 국내 외화벌이용 아파트 건설은 승인되지만, 당 39호실 산하 건설사업소들의 외화벌이용 주택건설은 금지되고 있다(B4). 이는 당 산하 기업소에서 살림집까지 지어서 판매할 경우 ‘인민들을 위해서 복무하는 가장 공정한 기관’이어야 할 당의 위신이나 최고권력자의 영상에 미칠 ‘후과’가 크기 때문이다(B4).49) 둘째, 기관·기업소가 자체적으로 건설한 주택 총세대수의 일정 비율을 의무적으로 국가에 귀속시켜 제대군관이나 집 없는 세대 등에게 무상으로 배정하고 있다. 셋째, 국가 배정주택에 새로 이주(입사)하는 세대의 ‘뒤그루’를 국가에 반납하도록 해서 이를 집 없는 세대들에게 배정하고 있다.50) 넷째, 주택 신축공사로 인해 철거세대가 생길 경우 다른 지역으로 입사시키거나, 이주대책을 마련하고 원거주지 신축주택에 재입사시키도록 하고 있다(A1).51)
이와 같은 주택배정제도의 특징은 김정은 정권의 지배역량 강화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이 제도의 정치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주택배정제도가 정치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이를 뒷받침하는 주택건설사업 자체도 강한 정치성을 갖고 있다. 북한의 주택정책 목표는 살림집법(제4조)에 나와 있는 것처럼 ‘살림집건설을 적극 벌(려서)’, ‘살림집수요를 원만히 보장’하는 데 있다. 김정은 정권은 이를 위해 국가 주택건설과 개인 주택건설에 의존하고 있다. 주택건설사업은 이런 목표 달성을 위한 주택의 생산·공급 확대를 통해 정권의 정당성을 강화할 수 있는 정책적 수단이지만 그 정치적 의미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이 점을 체제유지를 위한 정치사업이라는 면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국가 주택건설사업에서 비교적 잘 드러난다.
북한에서 도시 현대화, 도로 정비, 주택 증가는 ‘혁명 발전과 국부 증가’의 경험적 지표로 인식되는데(C1), 김정은 정권은 국가 주택건설사업을 체제 내적 결속을 도모할 수 있는 중요한 정치적 실천의 장(場)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전국적·지방적으로 물적·인적 동원체제를 가동하는 국가 주택건설은 체계적으로 조직되는 건설현장의 선동선전사업 및 지역주민의 후방사업 지원과 결합되어 ‘봉쇄 속에서도 국가가 건재하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과시’함으로써 ‘대내적으로 인민들한테 사회주의에 대한 신심을 갖게 하고’, ‘간부들을 결속시키는’ 정치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A1).
대도시 주택건설장의 한 체험자는 건설사업이 ‘간부들 사이에서 경쟁심을 불러일으키고, 자기 밑의 사람들을 집결시키고 동원하면서 긴장시키는 효과를 만들어내고, 간부들에 대한 충성심이나 존경심 불러일으키게 한다’고 했다(A1). 중소도시 주택건설장의 다른 한 체험자도 “제국주의자들이 우리를 말살하려고 하지만 우리가 주저앉을 수 없다. 자력갱생 해서라도 그에 맞서서 이 일을 꼭 해야 한다. 이런 사상교양이… 선전선동 수단을 동원해서… 사람을 발동시키고… 당적으로 평가도 해주고, 어쨌든 시대에 맞는 방법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의견을 가진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게 안 하고는 못 배기고, 사람들 심금을 많이 울린다”고 했다(M2).
이런 증언들에 비춰보면 북한당국이 2017년에 려명거리 건설 완공 합동감사문에서 ‘려명거리건설은… 제국주의자들과 적대세력들의 야만적인 제재압살책동을… 견결한 사회주의 수호정신으로 산산이 짓부셔버리기 위한 치렬한 대격전’이라고 평가한 것은 이런 정치적 효과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볼 수 있다.52) 이런 맥락에서 국가 주택건설사업은 그 자체가 체제유지를 위한 사회정치적 결속효과를 산출할 수 있는 유력한 정치사업이라고 볼 수 있다.53) 국가 주택건설사업의 이런 정치성은 비공식적 주택시장의 발전을 제약하는 요인들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아래에서 이 점을 살펴본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문란해진 국가주택 ‘이용질서’를 규제하기 위해 관련법들을 보완해 온 북한은 2000년대 이후에는 살림집법을 제정하고 부문법들의 유관 처벌 조항을 강화하여 공식적으로 주택매매를 금지하고 있다(문흥안, 2018: 123- 125). 그렇지만 이런 법조항들이 사문화되다시피 하면서 주택(사용권)의 ‘불법적인’ 매매에 의한 비공식 주택시장이 발전해 왔다. 주택매매는 두 가지 경로, 즉 신축주택의 개인 판매와 기존주택의 개인 거래를 통해 이루어져 왔다.
신축주택 매매의 경우 법적 처벌을 의식하여 주택건설과정에서 구매자가 건설주에게 건설자재나 설비 같은 현물이나 외화 현금을 ‘지원’(‘기부’, 선투자)한 데 대한 ‘탈상품화된’ 주택 보상이라는 ‘합법적’ 형태로 이루어진다(A2, H1). 주택배정방식과 연계해서 보면 권력기관 가족아파트 일부 공급분과 특수단위의 외화벌이용 주택, 국가(중앙·지방)와 공장·기업소의 일반 배정주택 일부 공급분이 이에 해당한다.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전자의 두 부류의 상품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보인다.54) 기존 주택의 경우 개인적 연결망이나 거간꾼을 통해 입사증을 교체 발급받는 식으로 매매가 이루어지는데, 마찬가지로 그 비중을 파악하기 어렵다.55)
이런 복잡한 사정 때문에 북한의 도시 주택공급과 소비에서 상품주택의 규모를 따지기는 쉽지 않지만, 다른 체제이행국들과 달리 북한의 주택시장은 주택배정제도에 의해 개인건설 주택을 포함한 모든 주택의 국가소유제를 유지하면서56) 개인들의 주택 사용권만 인정하고 주택매매는 불법으로 규정한 위에서 비공식적으로 발전해 온 점에 그 특징이 있다. 이런 특징은 다른 체제 이행국들의 초기 주택개혁 방식이나 주택시장 발전경로와 적지 않은 차이가 나는데,57) 주택매매의 ‘불법성’은 국가가 비공식 주택시장의 발전을 합법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유용한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북한 주택시장의 이런 특수한 사정은 위에서 검토한 주택배정제도의 정치적 성격이나 주택건설사업의 정치적 규정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김정은 정권의 유일지배체제의 안정적 재생산의 중요 요소인 주택건설·공급사업의 주도권을 국가가 계속해서 장악해야 할 필요성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의 주된 통제대상은 개인 청부업자와 연계된 비공식적 주택시장 문제이다. 국가는 주택공급 확대를 위해 개인 청부업자의 상품주택 생산과 시장 공급의 ‘불법성’을 묵인하면서도 이 불법성을 빌미로 삼아 주택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통제하는 이중적 전략을 취한다. 세 가지 차원에서 이 점을 검토할 수 있다.
제도적 차원의 규제방식으로 두 가지를 고려할 수 있다. 하나는 최고권력자가 유일지배체제에서 보장된 ‘초법적’ 재량권을 행사하여 비공식적인 개인 주택건설·투자를 ‘불법화’하는 경우이다. 실례로 미래과학자거리 조성을 위해 김정은이 정해준 거리 조성 구획 안에 포함되는 기존 아파트는 전부 철거 대상이 되었는데, 특수단위들이 건설하는 아파트들을 포함해서 이 일대에 건설 중이던 아파트 몇 백 세대에 투자한 개인들은 ‘불법적 주택 거래’를 했기 때문에 막대한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A2).58) 앞에서 언급한 평양 창전거리 건설 당시 철거입사증 불법 매매와 관련해서 김정은이 철거세대들을 무조건 원상복귀시키라는 방침을 내린 실례도 이 경우에 해당한다. 이 방침에 따라 철거입사증 거래가 무효화되고 주택을 구매한 개인들은 큰 재산 손해를 입었다(A1). 이 실례들은 비공식적(‘불법적’) 거래에 의해 획득한 주택 재산권의 불안정성과 불확실성 때문에 개인들이 ‘믿음성을 갖고’ 선뜻 투자하기를 꺼려하고(H2), 그에 따라 주택시장 발전이 제약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59)
다른 하나는 살림집법(제10조)에 명시한 것처럼 ‘자체적인’ 주택건설의 주체를 기관, 기업소, 단체로 한정하고, 이들이 주택건설을 위해 ‘반드시 준수’해야 하는 일련의 행정절차에 의해 기관·기업소의 명의를 빌린 개인 주택건설을 규제하는 경우이다. 간부부패를 매개로 이런 행정절차 준수가 느슨해지기는 하지만 기관·기업소와 연계하지 않는 한 개인 청부업자는 국가로부터 건설명시, 건설부지, 건설허가 등을 받을 수가 없다(H2). 이와 더불어 개인건설 주택의 ‘불법적’ 매매가 주택배정처(과)의 입사증 발급 절차를 거쳐 합법적인 국가배정 주택으로 전환된다는 점(이철, 2016: 34-42)에 주목할 수 있다. 이는 비공식적 개인 주택거래가 주택배정제도를 매개로 해서만 합법성의 외피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국가는 이런 제도적 절차들의 준수를 강제함으로써 공식영역에서 개인건설 주택의 ‘사실상의 사유권’을 제약하면서 일정하게 국가의 통제권을 유지할 수 있다.
정책적 차원에서 국가가 가용 건설역량을 주택건설에 집중함으로써 기존 주택가격의 하락을 유도하여 개인 주택건설을 위축시켜 주택시장을 통제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지방의 당·정기관이나 개인 투자자는 주택건설 역량이 변변치 않다는 점에서 이런 규제정책은 평양에 해당된다.
2000년대에 김정일 정권은 수력발전소, 간척지, 물길공사, 도로건설 등 인프라 건설 투자에 집중했기 때문에 ‘개인들이 아파트 건설 공간을 치고 들어올 수 있었다.’ 이에 반해 김정은 정권은 2010년대 이후 평양의 대규모 아파트 거리 조성사업 같은 국가 주택건설에 치중해서 ‘개인청부가 빛을 많이 잃었다’(A1).60) 실제로 과학자·교육자 선물집 겸 직무주택, 권력기관 가족아파트, 일반배정 아파트가 대규모로 무상공급됨에 따라 인근지역 아파트 가격은 예외없이 하락했다. ‘제재가 강화된 뒤에 돈도 잘 안돌고, 김정은이 평양에 아파트를 많이 지어놓은 통에 팔겠다는 사람은 좀 많은데 사겠다는 사람은 줄어 집값이 절반 꺾였(고)’ 그래서 소액 주택 투자자가 ‘망하는’ 경우도 나왔다(N). 더구나 이 아파트 단지들로 인해 인근지역의 전기나 수도 사정, 오물 처리 등이 더 어려워지고, 또 무상공급 받아 이주한 뒤 남는 뒤그루들로 인해 주택공급 여력이 상대적으로 더 늘어나서 인근지역 주택가격은 이중으로 타격을 받았다(A3, E, D3).61) 이런 사정 때문에 개인 주택건설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행위자 차원에서 거물급 개인 청부업자들을 선별적으로 제거하여 주택시장에 타격을 가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실례로 2013년 말에 장성택 일파가 숙청되면서 장성택 친인척 등 평양 건설부문의 ‘청부 왕초들’이 거의 모두 없어진 뒤에 개인 청부업이 ‘표날 정도로 줄어들었다’(A5, B1).62) 평양 주택시장을 주도해 온 이들의 제거로 2010년대 후반까지도 개인 주택건설은 활력을 잃었다.
숙청 같은 이런 정치적 계기가 없어도 ‘전주(錢主)가 어느 정도 크면 법기관에서 지켜’보기 때문에 ‘살림집 사고파는 일이 너무 심하고 노골적이고 무질서하면 (김정은이) 방침을 내려 보낸다’(B5). ‘개인들이 비법적으로 부지를 받고 명시를 받아 집을 지어 팔아서 많은 돈을 버는 것’을 ‘완전히 막지는 못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이런 비사회주의적 행위는 ‘사회주의에도 어긋나고, 국가의 유일적 중앙집권적 관리체제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국가는 방침 집행에 의해 ‘너무 난장판이 되는 것을 억제할’ 수는 있다(H1). 이 점에서 주택매매와 관련된 살림집법이나 유관 부문법들의 처벌 조항 ‘사문화’를 일면적으로 해석하면 곤란하다.63) 국가의 이런 통제방식은 김정은 정권의 유일지배체제 지속에 도움이 되는 한도 내에서 개인 청부업자들의 주택건설과 주택시장 발전에 의한 ‘사적 자본축적’ 활동을 묵과하는 전략에 의존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런 맥락에서 ‘간부와 건설업자 연합세력’이 주택건설을 주도한다는 주장은 제한적으로만 유효하다. 실례로 개인 주택건설의 ‘막후 실력자’ 집단에 해당하는 항일투사 3, 4대 후손의 가족들이 하는 주택사업은 법기관 같은 데에서 ‘감히 건드리지 못(하지만)’ 이들이 ‘안하무인격으로 막 나가지는 못한다’(D2, A3).64) 그렇게 하다가 ‘간부들이 목 떨어지는 걸 봤고’ 이런 수익추구 활동 자체가 공개되면 ‘그 손길이 잘리(고)… 현직 간부인 자기 가족 성원의 안전이 더 무섭기 때문에 최근에는 돈 더 벌겠다는 욕심보다도 안전하게 있겠다는 생각’을 더 강하게 하기 때문이다(A3). 또 요직에 있는 권력기관 상급간부들도 ‘자기 결심만 하면 돈 모으는 것은 일 아니’지만 ‘자그만 실수가 생기면… 돌이킬 수 없는 후과가 초래’되기 때문에 그런 위험을 ‘다 타산해서’ 처신한다(D1).
요컨대 국가는 개인 주택건설·매매의 ‘불법성’을 빌미로 삼아 개인 청부업자나 주택 투자자들에게 재산상 타격을 가하거나, 이들을 선별적으로 처벌하는 데 재량권을 행사하거나, 평양 위주로 대규모 국가주택을 건설함으로써 비공식 주택시장의 발전을 ‘유일영도체계’ 유지에 위협이 되지 않는 방향으로 관리하려고 한다고 볼 수 있다.
Ⅵ. 결론
이상의 검토 작업을 통해 볼 때 김정은 정권의 주택배정제도 운영과 주택건설·공급사업은 유일지배체제의 안정적 존속을 목표로 하는 ‘정치적 사업’의 성격을 강하고 갖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몇 가지 점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첫째, 주택배정제도의 네 가지 배정방식은 지배체제 유지를 위한 정치적 충성도와 기능적 필요성을 기준으로 선물집에서 일반 배정주택까지 위계적으로 차등화되어 있다. 또, 주택배정제도의 운영에서 특별 배정주택들(선물집, 직무주택, 가족아파트)은 체제보위장치로서, 그리고 일반 배정주택은 사회보장장치로서 정치적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둘째, 국가 주택건설사업은 그 자체가 체제 내적인 정치적 결속과 간부들의 충성심 제고와 대중의 정치적·경제적 동원 효과를 산출할 수 있는 유력한 정치사업으로 활용되고 있다.
셋째, 국가는 주택공급 확대를 위해 개인 주택건설·공급의 불법성을 묵과하면서도 유일지배체제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비공식 주택시장에 개입하여 통제하는 이중적 전략을 취한다. 여기에는 비공식적 주택 재산권의 불인정, 개인 주택건설의 규제, 국가주택의 공급 확대, 개인 청부업자 제거 등과 같은 조치들이 포함된다.
이런 점들에 비춰볼 때 김정은 정권은 주민 일반의 충성 유도, 중요한 국가정책의 성과 산출 독려, 체제안보와 관련된 핵심 간부층 관리, 그리고 핵심군중에 대한 물질적 보상 제공 차원에서 주택공급 통제권을 활용하는 ‘주택정치’에 적극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따라서 국가가 지금과 같은 유일지배체제와 ‘우리 식 사회주의’라는 공식담론을 고수하는 한 당분간 주택 사용권 및 소유권과 관련된 기존 배정제도의 기본 얼개는 그대로 유지될 공산이 있고, 개인 청부업자(부동산 개발업자, ‘사적 건설자본’)가 공식적으로 나설 수 있는 제도적 공간을 허용해 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 경우 개인 주택건설·공급은 여전히 주택배정제도의 틀 안에서 기관·기업소의 외피를 쓰고 이루어지기 때문에 비공식 주택시장의 발전은 이를 규제하려는 국가의 개입에 의해 제약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렇지만 좀더 길게 보면 국가의 열악한 재정사정으로 인해 국가 주택건설이나 개인 주택건설에서 ‘기부’ 형식을 빌린 주택매매가 늘어나고 그에 따라 비공식 주택시장의 점진적 확산도 불가피해 보인다.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둘 때 비공식 주택시장의 발전을 둘러싸고 상반되게 작용하는 ‘정치적 규정력’과 ‘경제적 불가피성’이 타협적으로 양립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지배체제의 부분적 변형이 이루어지고, 주택시장이 정치적으로 구성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지를 장기적 관점에서 열린 안목으로 전망해 보는 작업이 유의미할 것이다.